어머니는 내게 있어 약간은 절대자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 모른다. 엄마의 청춘은 무엇일까? 바람불어 좋은 날, 젊은 날의 어머니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어떤 우수에 잠겼을까?

집이 가난해서 어머니는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한번도 ‘안된다’ 말을 안 하셨다. 책을 사 달라고 하면 사 주셨고 재수를 한다면 하라 하셨고 서울로 대학을 가야 한다면 하라고 하셨다. 당신은 매일 10시 넘게 오셔도 새벽 4~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7개를 싸도 자식들만은 항상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내 성격의 8할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나 역시 매사 긍정적이다. 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나에게는 항상 행운이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실하다. 게으른 건 죄악이라 생각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것 만큼 못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두 마디 말이 아니라 평생 옆에서 본 어머니의 행동으로부터 자연스레 내 몸에 각인된 기억이다.

엄마의 청춘은 어땠을까? 쌍거풀 수술을 했는데 그 시절에도 보통의 사람들은 엄두를 못내고 조금 꾸미고 노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었을까? 처녀 때는 입이 약간 뒤집어진 언청이 흔적이 있어서 좋아하던 동네 총각에게 용기가 없었다고 한다. 어떤 러브 스토리가 있었을까? 엄마도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던 어린 시절도 있고 남자에게 이쁘게 보이려 한 꽃다운 시절이 있었을텐데.

고생만 하시고 못 배우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시집, 장가 갈 때 다른 사람처럼 변변한 전세 집이라도 못 해 주신게 항상 미안해 하신다. 이제 늙으신 어머니는 그저 절에가서 늙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만 있다. 남들처럼 해외 여행, 크루즈는 바라지도 않으신다.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의 청춘은 어떤 색깔일까? 못난 4명의 자식은 그저 아파트, 사교육에 억눌려 어머니의 청춘이 궁금하지 않다. 어머니는 그저 절에 가고 싶으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식 놈덜 줄 김치를 만드시고 그걸 무겁게 직접 가지고 온다. 그리고 자식들 집에 와서 손수 걸레질을 하신다.

어느새 65살이 넘으신 어머니는 언제쯤 홀가분 해질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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