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이란? <자기앞의 생> 리뷰

Posted at 2011. 4. 11. 05:11//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자기앞의생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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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가면 뒤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 이성복 「그해 가을」 中


아버지 씹새끼다. 조금 놀라운가?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 한번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한번쯤이 아닌 사람들도 많을테고. 다만 차마 입으로 말을 못한다. 웬지 아비를 씹새끼라고 하면 '인간' 같지 않다고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자연히 말을 못하게 된다. 말을 못하니 생각조차 희미해지는 것이고.
 
과연 그런데 아비를 '씹새끼'라고 하면 왜 '인간' 같지 않다고 느껴야 되는 것일까?
 
소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주인공 모모의 아버지는 살인자다. 그것도 모모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를 죽인. 한 번 생각해보라. 자신의 아비가 자신의 어미를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행히(진짜 다행일까?) 모모는 14살이 될 때 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자란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모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면 혹시 이상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그 사람 참 인간적이다'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말의 본질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정의는 정확히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 말은 보편 타당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
 
주인공 모모는 아직 2차 대전의 상처가 남아있는 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창녀의 아들로 태어난다. 아비는 그 창녀를 관리하는 아랍인 '포주' 다. 하지만 어느 날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던 아비는 어미를 죽여 버린다. 어미는 자기가 관리하던 창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웠던 어미가 죽고 모모는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라난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 적인 수준에서 이 아이의 일생을 예측한다면 어떨까? 유명한 살인마 '김길수', '김길태'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예상과 다르게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 다른 보통의 아이들 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어떻게 가능했을까?
 
샤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하였다. 비유를 하자면 이 아이의 본질은 살인자와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불행한 아이이지만 이 아이의 '실존'은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모든 인간들의 인간의 보편적 특성인 자유에의 의지, 성찰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라고 얕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생각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다. 그 능력이 주위 환경에 의해서 제약 당할 뿐이다. 다행히도 모모는 끊임없이 되돌아가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모모를 키운 '기른 엄마' 로자 아줌마의 따뜻함이 있었다. 그녀는 유태인이다. 2차 대전 중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 갔었다. 그 시절 호된 고문의 기억은 평생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따뜻함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큰 상처를 가진 모모를 정성스럽게 키울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상처가 있기에 다른 상처를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나치'로 대표되는 수컷의 횡포를 기억하는 로자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살인자인 '모모'의 아픔을 감싸 안아준다. 
 
'모모'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다. 모모에게 세상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아랍인 하밀 할아버지, 아프리카 족장 출신의 포주 등 다양한 소외된 사람들이 모모와 로자 할머니의 힘이 되어준다. 특히 아름다운 '여장남자' 룰라 아주머니는 늙고 병들어서 치매까지 걸린 로자 할머니를 매일매일 목욕까지 해 주시면서 마지막까지 진실한 친구가 되어 준다. 

어디에도 정상적인 남자들은 없다. 소위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조건인 부모가 있고 기독교를 믿고 남자이고 프랑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모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모를 경계할 뿐이다. 그들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다른 사람들, 즉 타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과연 그들이 정말로 '인간' 다운지 따져 봐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처음에 언급한 이성복 시인처럼 아비를 씹새끼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모모가 끊임없이 영화를 되돌리기 해서 보는 것처럼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을 계속해서 리와인드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해서 마주해야 한다. 보기 싫은 부문이 있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겁하게 외면하면서 다른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긍정적인 생각, 좋은 생각 등으로 아버지는 그래도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았다, 아버지 덕분에 내가 고생없이 자랐다 따위의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버지들은 고생은 하였지만 타자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저 자신만이 최고라고 여기고 당신 아닌 다른 사람들은 그저 억압하기 일쑤였다. 아비와 제대로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모든 변화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프다고 회피하는 순간 발전은 없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여도 영원히 되돌이 표일 뿐이다. 씹새끼를 씹새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치'의 상처를 간직한 로자 아주머니는 병원에서 죽지 않는다. 병원이 상징하는 섣불리 용서하거나 타협하는 곳이 아니라 지하실에서 죽어간다. 지하실은 로자 아주머니의 수용소를 상징한다. 로자 아주머니는 자신이 나치를 기억하는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비록 육체는 치매가 걸려 약해졌지만 정신까지 약해지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모두 아비를 씹새끼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자기 앞의 생'을 살 수 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자기 앞의 인생'인 이유다. 우리는 '우리' 앞이 아닌 '자기'앞의 생을 살아야 한다, 아니 살아내야 한다.

아, 물론 모든 아버지가 씹새끼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버지가 진짜 씹새끼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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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청춘이다인생앞에홀로선젊은그대에게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난도 (쌤앤파커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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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상한 일이다. 청춘은 '반짝반짝 빛나'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이상한 제목에도 베스트셀러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청춘은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다. 물론 방황 역시 청춘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로만 기능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로미오와 줄리엣' 등 청춘을 다루는 모든 고전들에서 청춘은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어떤 것이다. 방황은 그저 청춘을 더욱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유독 우리 나라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서 청춘은 아름답게 빛나지 못하는 것 같다. 북유럽의 어떤 나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전체 국민들에게 우리 돈으로 약 3천만원을 지급한다. 단순히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수고했고 20살을 맞은 기념으로 잘 놀아보라고 주는 것이다. 프랑스는 젊은 '동거' 커플들을 위하여 아주 싼 값의 임대 주택을 정책적으로 공급한다.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사랑하고 섹스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해외만 아니다. 과거 우리 나라도 비슷하다. 널리 알려졌듯이 '춘향'이는 16살이 채 안 된 나이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수위는 높았다. 서정주, 이상 등 뛰어난 작가들이 널리 이름을 알린 것은 그들이 채 20대 중반이 안 되는 나이였다. 하지만 2011년 대한 민국에서는 20대는 아이 취급을 받고 있다. 단순히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 아이 취급을 하려면 보살펴 주기라도 잘 해야 하는데 지금은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생존 자체가 힘들다. 한 학기 등록금이 평균 750만원이다. 매 학기 그들은 '죄인'이 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최근의 전세값 파동으로 대학가 자취 비용 및 하숙비 상승을 고려한다면 '아프'다는 책의 제목에 절대 수긍이 간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픈 것은 청춘들만이 아니다. 따져보면 아프지 않은 세대는 없다. 굳이 '삶은 고' 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느낀다. 책에서 밝혀듯이 이 글의 저자도 평탄치 않다고 고백하였다. 중년에 교수의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의 인생도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춘은 원래 아픈 것 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성 세대의 직무 유기를 느낀다. 빛나야만 하는 청춘을 빛나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기성 세대에게 그 책임이 있다. 청춘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들은 순전히 피해자다. 그런데 문제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 기성 세대는 그저 청춘을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만 한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가해자가 교통 사고를 당한 피해자에게 원래 고속도로는 위험해요 라고 한마디 하는 것 같다. 

저자를 비롯한 기성 세대의 자기 반성이 없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 원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 책에서 냉철한 자기 반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저자 특유의 따뜻한 감성은 느껴진다. 자기도 법학을 전공했는데 이런저런 방황을 해야 했다고. 하지만 그저 철저하게 '가슴' 차원에서 머무른다. '머리'에서 시작하는 투철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식의 나이브한 접근은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서울대를 나오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현재 서울대 교수님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흔해빠진 엄친아’ 스토리일 뿐이다. 아마 청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자존감’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잘못된 접근 방식은 정작 방황을 겪고 있는 20대 그들의 이야기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이신 서울대 교수 님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충고'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문제 해결 접근 방식이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청춘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 대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 가장 필요하다. 치료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먼저 정확한 진찰이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의 입으로 글로 표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과정 없이 그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청춘을 그저 충고나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개체로 취급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아플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책처럼 동감을 가장한 '충고'만 하려고 하는 기성 세대의 사고 방식, '프레임' 자체의 문제가 아닐까 쉽다.  

이 책 보다 <왜 이것은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가 이러한 청춘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훨씬 적확하다. 그리고 '마이크 독식 사회'를 반대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가볍기는 하지만 <위풍당당 개청춘>100배나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2권의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그러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청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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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체호프 단편선

Posted at 2011. 3. 26. 12:37//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체호프단편선(세계문학전집70)
카테고리 소설 > 러시아소설
지은이 안톤 체호프 (민음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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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의사의 고단함, 러시아 민중의 일상, 미녀, 평범한 등장 인물 & 평이한 사건

문체: 극작가 답게 장면, 장면을 잘 묘사했다. 쉽게 쉽게 속도감 있게 읽힌다.

주제: 작품마다 달라서 전체를 간통하는 작가의 주제는 잘 모르겠다.

감상: 하나의 작품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있으니 이해하기가 쉬웠다. 나의 글도 이것저것 쓰려고 하지 말고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하나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단편 소설 장르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 책. 세계 3대 단편 소설가 라는 체호프의 10개의 단편 모음.


도스트에프스키 등의 러시아 소설처럼 지리하고 어려운 심리 묘사가 없는 편이라 비교적 쉽게, 잘 읽혔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 장르는 나에게 사회 분야 책 보다는 어려운 편이다. 실제 감응도 크지 않다. 아직 나에게 '소설읽기'는 여전히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p.108 (베로치카) 그가 그 고백을 그다지도 서툴고 무뚝뚝하게 <거절>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상식 있는 진실한 인간도 자신의 선의에 반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까닭 없이 가혹한 고통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p.113 (미녀)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휘익 불어오더니 권태며 먼지와 같은 오늘 하루 동안의 찌거기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당신은 푸른 갈대밭이 고요한 강물에 어울리듯 그녀의 검은 곱슬머리와 눈썹이 그 이마와 볼의 부드러운 하얀빛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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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만큼성공한다김정운교수가제안하는주5일시대일과놀이의심리학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김정운 (21세기북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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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여가, Work-Life Balance

문체 : ‘논다는 것의 정의도 잘 모르는 우리 나라의 평균적인 독자를 고려하여 친절하고 평이하게 서술함심리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임상 사례도 풍부하게 다룸.

주제 우리 나라가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여가 활동 장려가 필요함.

감상 : 반가운 주장그러나 별다른 깨우침은 없는 평이한 수준만약 그것이 이미 내가 충분히 여가를 즐기고 있어서라면 참으로 다행이다.

 

아쉬운 점 : 왜 노는 걸 경제 성장생산성 향상을 위한 창의성 발달에 결부시킬까노는 거즐거운 거행복한 거는 그 자체로 신성 불가침의 영역인데출판사의 판매 전략 상 어쩔 수 없는 요소이겠지만 아쉽다.

 

한 줄 평가

그저 폭탄주 마시고 노래방 가고 단란주점 가고 명품 쇼핑하고 골프 치는 것만이 여가 활동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심리학으로 풀이한 건전한 '여가활동 정의에 관한 보고서

 

#0 안식년 1

모든 유태인은 6년을 일하면 1년의 안식년을 가진다고 한다그러기에 그들의 생산성이 뛰어나다나는 7 9개월을 일하고 4개월의 안식기간을 가졌다.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앞으로 5년을 더 일하면 나도 1년의 안식년을 가지겠다.

 

 1년 동안 여행을 가고 여행을 다니며 유성용의 '여행 생활자'와 같은 책을 쓸 것이다.

 

아무튼 모든 계획들은 세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비록 또 하나의 공수표 남발이지만.

 

#1

p.61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한다재미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니이렇게 묻는 이들에게 나는 되묻는다아닌가자기가 정말 재미있어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이 때 중요한 건 '끊임없이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사람의 환경은 계속 변화한다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사는 공간이 변화한다그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진화하는 건 불문가지다따라서 재미있어 관심사도 끊임없이 변화한다그 변화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고 또 그것을 실행하자그러면 세상이 살만할 것이 될 것이다당연한 거 아닌가매 순간이 재미있다면 전체 인생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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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라불리는기적집단을벗어나참된개인으로비상하라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박성현 (들녘,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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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 개인주의
문체 :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 잦은 니체 발췌
주제 : 개인주의 옹호. 단, 여기서 개인주의는 개인의 돈, 성공, 웰빙 등의 단순 쾌락 추구가 아니라 자아와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개인을 의미.
공감 : 니체가 말한 낙타, 사자, 아이의 개념에 맞게 집단의 굴레를 벗어나서 개인을 옹호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재오, 김문수처럼 자기 반성을 넘어서 자기 비하를 하는 것 같은 운동권 어투가 거슬린다. 그래서 그런가? 전반부 유럽의 철학 역사를 서술하는 부문에서 잘 읽히는 책이 갑자기 후반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논리의 비약으로 이어진다. 마치 영화 '아이들'처럼 책을 2권 읽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다.

발췌
 p.48 - 공포와 질투 : 떼가 개인을 조종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우리 사회의 만연한 공포와 계급 투쟁을 보라.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개인의 원동력은 용기다. 불안이 아닌 용기야 말로 개인이 진정한 자아로 재탄생 될 수 있는 밑거름이다.
불개와 장군, 악마와의 거래 p.101 프랑스 혁명 1789은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의 마수로 끝나다. 나폴레옹은 유럽에 국가의 힘을 보여주고 유럽은 근대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두 명의 예언자 p.120 오직 키에르케고르, 니체만이 개인을 긍정하였다. 진실, 영혼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을 긍정하였고 니체는 오직 개인만을 긍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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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소소한일상달달한행복놀이30
카테고리 시/에세이 > 테마에세이 > 포토에세이
지은이 강미영 (비아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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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핑크색 표지만큼 발랄한 책. 한번에 쭈욱 가볍고 경쾌하게 읽히는 맛이 특히 좋다. 
읽고 나면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도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이 있군!! 라는 신선한 깨달음을 준다.
또한 파브로 곤충기 스타일의 30대 초반 싱글 여성의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라는 류의 현재를 희생하라는 메세지가 아닌
현재를 즐겨야 미래가 있다 라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오르게 만드는 좋은 책.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즐겁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 왜 꼭 "소비"를 해야 되는 것인지.
물론 우리 사회에서 돈은 곧 자유다 라는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꼭 무언가를 사서 이쁘게 꾸미고 여행을 떠나야 세상이 즐거워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읽고 나서 조금은 허전하였다. 

이 대목에서 제발 그래서 어쩌라구 라며 성급히 대안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조건 대안을 요구 할께 아니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돈'에 구속되어 있는지
좀 더 천천히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p.s
최근 철학책을 보고 있다보니 세상이 삐닥하게 보인다.
서평도 굳이 외눈으로 쓰는 것 같아 나 스스로 재수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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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월화수목금금금의 한 직장인이 어느날 벌레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집안 식구들은 그를 벌레 취급한다. 그 집안 식구들이란 그 직장인이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다. 심지어 그는 누이 동생을 음악 학교로 보내려는 마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냉소에 벌레는 죽었다. 싸늘한 시체를 바라보며 남아있는 식구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저자의 인용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여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물론 재미는 별로 없다. ㅎㅎ

#1
잔치에 대한 나쁜 추억. 가족들이란 꼭 모이면 쥐 뜯고 싸우고 지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다. 꼭 다같이 모이는 잔칫날 싸운다. 이번 설날도 영락없다. 물론 싸운다고 나쁘지 않고 실제로는 웃음도 띤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행복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과연 무언지 혹은 지역 더 나아가서 국가, 여하튼 개인과 맞서는 집단이란 과연 무언지.

박노해가 말한 ‘나 없는 우리’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지식이 짧아 섣불리 결론은 못 내리겠지만 결국은 스피노자가 말한 개인의 코나투스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은 정리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쁨의 윤리학’ 이라고 이걸 제약하려는 제도에는 맞서 싸워야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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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대한 열정

Posted at 2011. 1. 18. 08:54// Posted in 책을 쓰자

#fb 야구에 대한 나의 에피소드를 적어 보려 한다. 이유는 <마흔, 마운드에 서다/정범준 작> 라는 책에 감동하였기 때문이다. 나도 작가 아저씨처럼 야구에 대한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물론 언제 유통기한이 만료될 지 모르는 또 하나의 설레발 일지 모르지만. 

<사회인 야구 필독서>



나는 야구를 하다 팔이 부러졌다. 공에 맞거나 방망이에 맞아서가 아니라 어처구니 없게도 공을 던지다 팔이 부러졌다. 정말로 공만 던졌는데 뼈가 정확히 3등분 되었다. 웃지 마시라. 농담 아니다.

그때는 내가 사회인 야구 시작한 초창기로 기억하니까, 아마 2006년 여름 일 것 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은 경기 시간이 토요일 새벽 6시 30분으로 잡혔다. 새벽 시간으로 잡은 사연이 조금 웃긴데 상대 팀이 ‘유흥업소’ 관계자였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밤을 새고 근무하고 오셔야 했기에 부득이 경기 시간을 새벽으로 잡아야 했던 것이다. (가끔 ‘언니’들도 응원 오셔서 흐뭇했다.^^)  

이른 시간이라 허겁지겁 노원구에 있는 산업대학교 운동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스트레칭 없이 바로 게임에 들어갔다. 보통의 경우 아무리 늦어도 목소리가 큰 팀 동료 김병우 선수의 구령에 맞추어서 반드시 체조를 했는데 그 날 따라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신입 회원 한 분도 게임에 선발로 출전했다. 보통 신입 회원은 주로 대타로만 출전하는데 그 날 따라 선수가 부족했던 것이다. 다행히 우익수이기에 공이 안 날라가겠지 했다. 사회인 야구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회인 야구에서 우익수 쪽으로는 좀처럼 공이 날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잉여’ 분들이 주로 우익수 수비를 맡는다.

사단은 1회 초 시작 하자마자 났다. 대부분의 사회인 야구가 그렇듯이 선두타자는 스트레이트 포볼에 도루, 무사 2루가 되었다. 이어서 나온 2번 타자가 우익수 쪽으로 힘없이 높이 뜨는 플라이 볼을 때렸다. 하지만 방금 말한 오늘이 데뷔전인 신입 이진영 과장님이 우왕좌왕 하시다가 볼을 놓쳤다. 생각보다 야구에서 뜬 공을 잡는 건 쉽지 않다. TV에서 보면 선수들이 쉽게 플라이 볼을 처리하기에 일반인들이 만만하게 보는데 내 장담하건데 처음 야구 하시는 일반인들이라면 백이면 백 다 놓친다.

2루수였던 내가 재빨리 달려가서 공을 잡았다. 공을 잡으려는 순간 이제 막 2루 주자가 3루 베이스를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평범한 공이라 잡힐 것으로 생각한 2루 주자가 스타트를 늦게 하였다. 순간 익숙한 프로야구 화면이 뇌리를 스쳤다.

상황은 1:1 동점, 9회 말 2사 2루의 긴장되는 순간. 일단 정확히 맞추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짧게 밀어친 타자의 공은 우익수 앞으로 빠르게 굴러간다. 경기를 끝내고자 2루 주자는 미친 듯이 3루를 밟고 홈으로 질주한다. 전진 수비 하고 있던 우익수는 날렵하게 공을 낚아채서 번개같이 홈으로 공을 던진다. 2루 주자와 포수가 홈베이스에서 격렬하게 뒤엉킨다. 박빙의 순간이다. 둘 다 애절한 눈빛으로 심판을 바라보고 있다.

그랬다. 숱하게 보아왔던 장면이 번개같이 스쳐갔다. 이제 막 주자가 3루를 돌고 있으니 내가 잘만 던지면 홈에서 아웃시킬 수 있다. TV에서 보기만 한 플레이를 내가 직접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프로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주자도 마찬가지다. 공을 움켜쥐고 한발 두발 도움 닫기를 해서 힘차게 홈으로 공을 뿌린다. 내 몸의 모든 에너지를 공에 모았다.

<마음만은 추신수>


그런데 던지고 나자 무언가 이상했다. 공을 던지고 난 팔이 제 위치가 아닌 것이다. 공을 던져보면 알겠지만 공을 던지고 나면 팔이 45’ 각도로 자연스럽게 하반신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팔이 덜렁덜렁 매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나중에 병원에서 X-ray를 찍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오른팔 상박 부분(팔꿈치에서 어깨까지)의 뼈가 정확히 3등분 나 버렸다. 의사는 이 부분의 뼈가 사람 신체 중 허벅지와 함께 가장 두꺼운 뼈인데 어떻게 공을 던졌는데 부러지냐고 의아해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옛말에 ‘뼈를 깍는 고통’ 이라는 말이 있다. 고통 중에서 가장 아픈 고통을 일컫는 말인데 왜 그 말이 생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무지막지 하게 아팠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처음에 다들 어깨 탈구 정도로 생각했다. 당연히 공을 던지고 나서 아파하니 그럴 수 밖에. 그래서 내 팔을 이리저리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상대 팀의 어느 한 분이 약간 아는 것이 있어 탈구 라면 어깨 부분이 부어 오르는데 이상하다고 하면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뼈가 부려졌는데 누군가가 뼈를 맞춘다고 이러저리 내 팔을 만졌다면?

급히 차를 타고 산업대 근처 가까운 ‘원자력 병원’으로 갔다. 가는 도중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차가 덜컥 거리니 당연히 그 진동이 고스란히 나의 부러진 뼈로 전해졌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 마다 어찌나 괴롭던지. 뒤에 나오겠지만 그런데 그 고통을 노원구에서 분당까지 한 번 더 겪었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태평한 토요일 응급십 당직 근무자(의사는 물론 인턴도 아니다.) 는 X-ray 부터 찍자고 한다. 한 참 후에 인턴 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오더니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보이시죠? 3등분 났네요.” 라며 나도 알만한 이야기를 했다. 젠장, 저러고 의사인지. 그런데 웃기는 건 여기가 암 전문 병원 이라는 거다. 원자력 연구소 산하 기관으로 출발해서 산업 재해와 관련된 방사선 연구를 주로 한다고 하였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청둥벌거숭이 같은 인턴이 대뜸 나에게 ‘골수암’ 운운한다. 사람의 팔 상박 부문의 뼈가 얼마나 두꺼운데 공을 던져서 쉽게 부러질리가 없다는 극히 상식적인 설명을 하면서 X-ray 사진을 보니 내 뼈 밀도가 약해 보인다며 정밀 진단을 하자고 한다. 참으로 황당했다.

나는 그냥 공을 던졌을 뿐이다. 그러다 사고가 났고 그저 어깨 탈구 려니 했는데 아닌 밤중의 홍두께도 유분수지 ‘암’ 이라고 한다. 뼈가 부러진 것도 믿기지가 않는데 ‘암’ 이라니. 일단 병원에서 일하는 큰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는 자기가 일하고 있는 분당의 재생 병원으로 오라고 한다. 아무래도 병원은 아는 사람 있는 곳이 낫다 싶어 분당으로 다시 부러진 팔을 잡고 이동했다. 출반 전에 응급 처지로 뼈를 맞추었다. 두 명이 내 팔을 잡고 으그적 했다. 정말 당한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당에서도 노원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사진을 찍고 기다린다. 팔이 점점 부어올라서 이제는 손까지 퉁퉁 부어 올랐다. 큰누나가 오고 팀원 중의 이 과장님도 도착했다. 이 과장님이 공만 제대로 잡았어도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 많이 미안해 하시겠지. 그런데 의사는 없다. 토요일이라 당직 의사만 있는데 그 당직은 수술하기 곤란하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경우라니. 누구는 뼈가 부러졌는데 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한다? 누나가 말을 하더니 그냥 병원 말을 듣자고 한다. 전공이 아닌 사람 그것도 당직 의사면 통상 레지던트가 많은데 그 친구가 하면 제대로 수술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월요일까지 참는 게 낫다고 한다. 모르는 환자 처지 인지라 고분고분 말을 듣는 수 밖에. 뼈가 부러진 채로 고스란히 토요일, 일요일을 지내야 될 판이다.

그래도 다행히 X-ray 사진으로 보면 암은 아니라고 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원자력’ 병원에서 오버(?) 한 것이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부러진 뼈를 움켜쥐고 주말을 보내고 다음 월요일 수술을 받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전신 마취를 했다. 마취 전, 후의 몽롱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눈앞에서 갑자기 희미해진 수술용 전등, 덩그라니 휑하고 추운 마취 회복실. 간호사가 한마디 한다. “안 깨어날 수도 있어요.” 젠장.

그렇게 철심을 박고 또 그걸 제거하는 수술을 또 했다. 2번이나 전신 마취를 했다. 전신 마취 후 어린 시절 똑똑하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던 나는 총기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해 겨울 그라운드로 다시 복귀했다. 모든 사회인 야구 팀이 그렇듯 우리 팀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체 청백전을 겨울에 가졌다. 그 시즌 마지막 게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판정 받았던 내가 출전 한 것이다. 팀원들이 무척 반가워 했다. 그랬다. 팔이 부러져도 나는 야구를 계속 하고 싶어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팔이 부러졌다면 영원히 야구를 그만두어도 이상할 리 없건만 굳이 나는 그 시즌에 바로 복귀를 하고 싶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래의 말과 조금은 유사하지 않을까? 2011년, 그렇게 나의 야구는 계속되고 있다.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톰글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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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_슬로 라이프 by 쓰지 신이치

Posted at 2010. 12. 26. 11:59//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발췌
p.54 민속 연구가로 특히 도호쿠 지방의 음식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유키 도미오는 생산자 대신에 ‘대기자’라는 말을 제안한다. ‘그는 농사를 짓는다는 건 작물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변화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게 교육의 본질이 아닐런지.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최선이다.

p.55 상대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게 하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 요컨대 함께 살아가는 일에 점점 더 서툴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왜냐하면 함께 삼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리지 않고 우째하였든 억지로 만들려고 애썼던 숱하게 지난 날들. 반성할지어다. 기다릴지어다.  

p.79 소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으니 나도 명품 가방을 사야 한다’는 심리는 혼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옷을 살 때의 기쁨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줄근해 보일지 모를 자신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소비 행위는 타자와의 경쟁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결국 나 스스로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내면에 자신이 있다면 외양은 그저 부산물일 뿐이다. 저절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흔한 말로 명품을 사지 말고 나 스스로 명품이 되도록 노력하자. 그건 더욱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다.

p.95 러미스에 따르면 지금 유행하는 세계화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식민지화나 제국주의 모두 서구 문명과 경제 제도 속에 전 세계를 편입 시키려는 것이었으므로 세계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일제 시대의 발전과 IMF 이 후 신 자본주의 시대의 발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모두다 자본을 가진 세력만 살찌운 행위가 아닌가? 하층 혹은 중산층의 삶이 개선되었는가? 시야를 돌려 다른 나라는 어떠한가?

선진국이라는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복지가 발달한 유럽은 아닌 것 같은데. 결국 나라의 방향도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는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살펴보면 이명박도 우리 나라가 복지 국가라고 하고 있다. 한미 FTA의 홍보 문구에는 어김없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한다.

진실을 봐야 한다.

p.100 이반 일리히의 말에 따르면, 빈곤은 사람들이 시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 깊어진다. 즉, 산업 생산에 의한 풍요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손발이 비틀린 사람들이야말로 불만과 무력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 속에서 각자가 지녔던 살아가는 기술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우리는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또는 ‘돈이 되는’ 기능과 능력, 태도라는 가치(희소성이 높을수록 환금성이 커진다)를 획득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매우 오래 학교를 다닌다.

밥을 하자. 주말 농장을 체험하자. 귀농을 준비하자.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주가 아니더냐. 자연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p.111 서울 도심의 가로수를 잘라보면 그 단면에 나이테가 없다는 애기가 생각납니다. 그늘이 없는 것은 그렇다 해도 나이테가 없다니요!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이테가 없다는 것은 성장이 없다는 것이다. 나무가 이런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p.126 “전후 일본은 구미 제국을 따라잡고 추월하겠다는 목표로 정치, 경제의 중앙 집권 시스템의 경제 대국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왔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이와 같은 전후 50년의 가치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일본을 목표없는 사회라고 조롱한다. 반면 우리 나라는 다이내믹 코리아 라고 자랑한다. 과연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747로 대표되는 성장 제일주의? 정작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여전히 구시대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모습이 아닌가?

p.143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말을 전해 왔다. 하지만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나? 이 생각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건가?

p.167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그럴 여유가 있으면 돈벌이나 다른 경제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과 자기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에, 어째서 우리들은 시간을 좀더 할애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가? 트위터 RT, 페이스 북? 아고라 서명? 너무 멀고 나약하다. 이러한 무기력을 떨쳐 낼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지방 자치,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 역할을 해 주어야 되는데 여전히 미약하다. 과연 우리에게 의무라고 하는 정치 참여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는가?  

1사 1촌 농촌 후원같은 1인 1시민 단체 가입의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도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p.175 <빠빠라기>에서 투이아비는 이렇게 말한다.
“배불리 먹고, 머리 위에 지붕을 지니고, 마을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신은 우리들에게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어째서 그 이상 더 일해야 하는 것일까?”

p.182 자동차를 부지런히 닦았으나 마음을 닦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뻔질나게 들어갔지만 제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기계가 나를 다 먹어 버리니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p.195 길에 서서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마 잡담으로, 내용 자체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다다의 말처럼, 문제는 대화의 내용이 아닌 것이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특별한 목적 없이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 여기에 바로 놀이의 원형이 담겨 있는 것이다.

p.210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이나마 줄여나가면서 자족적인 생활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는 것이다... (중략) … 그러나 일리히도 지적했듯이, 운동 차원의 언플러그에만 의미를 둘 필요는없다. 단순한 취미나 놀이, 도락이라 여겨지던 것 - 예를 들어 일요 목공이라든가 주말 정원 가꾸기 등에도 실은 중요한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분적인 플러그 뽑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들이 무엇을 배워 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과거 플러그되어 ‘편리’하고 ‘쾌적’한 현대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지금 우리들은 조금씩 생활의 기술을 회복해 가면서 생태계와 공동체에 새롭게 플러그되는 경험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p.227 새로운 제품들을 사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사회의 틀 자체가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스마트 폰이 없으면 대학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90년대는 핸드폰이 없으면 어려웠다. 여전히 대학 생활은 계속 힘들어져 간다. ‘청빈’(젊은 가난)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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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by 쓰지 신이치

Posted at 2010. 12. 25. 14:44//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저자

p.271 슬로 카페 선언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유기적인 organic 카페입니다.
무농약, 유기농 커피의 보급을 통해 ‘남쪽’ 생산자의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 그리고 일본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페이 트레이드 가게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부와 빈곤의 격차를 확대하는 일방적인 세계화 대신,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 ‘남’과 ‘북’,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 사람과 다른 생물들 간의 공정한 관계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푸드를 만듭니다.
안전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머니를 사용합니다.
이자를 낳지 않는 통화로서 지금 전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지역, 대체 통화를 받아들여 공정하고 활기찬 지역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정보 카페입니다.
환경문제, ‘남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 교환의 장, 그리고 음악, 영화 등의 표현 활동의 장이 되기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비즈니스를 꿈꿉니다.
투자, 기업, 판매, 소비 등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 등의 가치를 사회에 되돌리기 위한 사업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느림보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다가오는 환경 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의 문화 위기이며 라이프스타일의 파탄이라고 생각하여, 자연과 인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이고 친환경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마음 넉넉한 생활 문화를 제안합니다.

슬로 카페는 ‘나도 이런 카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from http://cafeslow.com


#0
요즈음 재미있게 보고 있는 쓰지 신이치 씨의 ‘슬로 라이프’. 최근 고미숙의 ‘호모코뮤니타스’,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의 연장선에서 읽고 있다.

#1
“천천히 읽는 책” 이라는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키워드는 슬로우와 책이다.

먼저 슬로우는 철학이다.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우리네 생활 질서를 거부한다. MB 역시 우리 안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니더냐. 무엇을 위한 성장이고 발전인가? 배불리 먹고, 머리 위에 지붕을 지니고, 마을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인생의 목적 아닌가? 이것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왜 계속 소비하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달려만 가고 있지?

책은 수단이다. 자신을 돌아다보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책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면  우리는 진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외고, 명문대, 대기업이 결코 선망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불쌍한 삶이 최고의 가치라고 강요하는 시대가 부끄러울 뿐이다.

#2
홍대 스피릿 이라는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 강남, 압구정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홍대 스피릿.
자본에 반대하며 건전한 문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 대안적인 창의적인 그리고 반 상업적인.  

카페 간판 혹은 메뉴판에 조그맣게 ‘홍대 스피릿’ 이라는 광고 문구를 집어 넣고 가맹점을 모집하는 거다. 물론 아무나 가입은 안된다. 위의 가치를 실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강제해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수입의 몇 %를 인디밴드에 후원합니다, 주말 농장에서 직접 기른 배추입니다, 진보신당에 후원하겠습니다, 매주 월요리 쉬는 날에는 4대강 반대 1인 시위를 한다 등등. “published by 홍대 스피릿” or “connect to 홍대 스피릿”으로 광고 문구를 만들고.

p.300 어쨌거나 나무늘보는 진화의 실패작이 아니라, 오히려 열대우림이라는 환경에서 훌륭하게 적응하고 번성한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포유류들이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강하게’를 외치며 세찬 생존 경쟁과 영고 성쇠의 역사를 거듭하는 것을 곁눈으로 지켜보며, 나무늘보는 높다른 나무 위에서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저에너지, 순환형, 공생, 비폭력, 평화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무늘보의 삶의 방식이야말로 21세기 인류 생존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힌트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월한 나무늘보


#3
그렇다는 이야기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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