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가약 2월 모임 후기

Posted at 2011. 2. 25. 18:39//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백만년에 정리한 모임 후기. 모임을 하고 정리를 해야 역사가 되는데, 그놈의 귀차니즘으로 못하고 있다. 후기만 잘 정리해도 엄청난 재산이 될 건데. 아쉽다.

그러고 보니 이미 동아리 애들과 4년 넘게 가졌던 독서 모임도 정리를 안해서 그냥 날려버렸는데.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잘 써야 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빨리빨리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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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등에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휜 각질의 칸들로 나위어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질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소설 <변신/카프카>의 충격적인 도입부입니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주인공이 갑자기 벌레가 되어 버립니다. 소설만큼이나 백권가약 2월 모임도 쎄게 시작 하였습니다.

혹시 소설과 유사하게 식구들에게 벌레 취급을 당한 경험이나 사례를 알고 계시나요?

처음부터 집에서 백수, 건강, 학업 등의 이유로 사실상 벌레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민감한 가족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백권가약이 시작한지 어느덧 1년 2개월, 지난 세월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신뢰라는 굳건한 바탕을 깔아주고 있었습니다.

당장 현재 진행형 백수인 저부터 담담히 이야기 합니다. 저의 집안일도 조금 보태어서. 이어서 30대 늙다리 학생, 거의 소녀 가장, 청년 실업 아들을 두신 어머니 등 생생한 신앙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아시디사피 글 이라는 게 말과 다른 성격의 매체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분위기는 무겁지 않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생도 아니고 어느덧 30대, 다들 개인의 아픔을 혼자만의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풀어 놓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 내공을 갖추었습니다. 당장 옆자리에 앉아있는 분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고 또한 일부 (혹은 대부분) 문제는 MB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문제이기에 굳이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자인 제가 무거운 분위기 질색하는 애니어그램 7번 몽상가 타입이라 토론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지난 22일 화요일, 서울역 RWS 사무실에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는 30대가 대부분인 저희 모임에서 큰 아드님이 31살이신 최은희 님(자칫 편향되기 쉬운 저희 모임에 큰 선물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요즈음 미모의 조국 교수님 따라 정치에 ‘급’관심을 갖게 되신 유지연 님, 독서는 물론이고 글쓰기 공부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듬직한 안학이 님, 최근 칼퇴근 할 수 있는 멋진 직장을 가지게 된 이슬기 님, 아이처럼 아이패드를 늘 가지고 다니며 위룰 게임 삼매경인 장종성 님, 2달 연속 선물을 가지고 참가해 주신 한상봉 님, 오랫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컴백하신 허수인 님, 백권 가약이 아닌 백수 가약 모임(최근 저희 모임에서 확인된 백수가 4명,  곧 1명이 추가될지도....)에서 퇴직이 아닌 전직의 능력을 보여주신 김혜원 님 그리고 저까지 총 9분이 모였습니다.

책이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만’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저자 카프카의 가족에 대한 불편한  문제 제기를 뒤로 하고 강신주 씨의 철학 책으로 넘어 갔습니다. 철학 이라는 또 하나의 편하지 않는  영역이지만 강신주 씨 책이기에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어려운 철학을 쉽게 풀어내어 우리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능력은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강신주 선생님>

필연성과 우연성을 인과 관계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현대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의 의견처럼 타자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사랑이다 등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에 관한 짧은 소감을 나누어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놀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넘어갔습니다. 일은 그저 스트레스이고 취미 활동 특히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월화수목금금금 우리네 모습이 역시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 참가자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서 거의 10개 넘는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취미는 취미일 뿐,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취미를 일로 만들어서 한 몸에 부러움을 받았던 한상봉 님 역시 10년 가까운 직업 생활에 피로감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취미와 일이 일치하여 좋았으나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자전거 타기 라는 새로운 취미 생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취미 생활이 일이 되는 것 역시 쉬운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 직업에서 성공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호이징하씨가 말씀한  ‘호모루덴스’ 본능에 입각해서 일상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사는 것도 대안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관건은 자기의 리듬에 맞게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느냐겠죠.  

마지막으로 “어떤 상호 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 의식”도 없는 진정한 의미의 ‘선물’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참가자들 모두 숙연해집니다. 모두들 진정한 의미의 선물을 주거나 받은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적어도 기억을 한다는 의미에서 지금껏 선물이라고 주고 받았던 것들이 대부분 한순간에 뇌물이 되어 버리는 순간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상봉 님이 진정한 선물로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2월 달에 저와 이슬기 님이 생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작은 생일 파티를 열고 영원한 글쓰기 멘토 행복한 상상 김민영 이사님이 아이폰 동영상 촬영도 해 주셔서 더욱 빛났습니다.
(동영상 링크는 요기로, http://www.youtube.com/watch?v=t6IFfsr2T3M)

그렇게 파티와 함께 케익 만큼 달콤한 2월 모임이 끝났습니다. 어려운 철학이지만 모두들 즐거운 모임이었다는 참가자들의 다소 형식적인 소감 발표로 모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자는 형식적인 소감 발표에 필 받아서 다음 3월 모임 주제 책도 어려운 철학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출간한지 보름도 안 되는 따근따근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 입니다. 그리고 2월 달과 형식을 똑같이 하여 다른 1권의 책은 문학, 그 중에서 단편으로 정하였습니다. 세계 3대 단편 소설가로 칭송받는 <체흐프 단편선>입니다.

시간, 장소는 동일하게 3월 마지막 주 화요일(29일)이며 서울역 행복한 상상 사무실입니다.
많은 참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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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금금의 한 직장인이 어느날 벌레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집안 식구들은 그를 벌레 취급한다. 그 집안 식구들이란 그 직장인이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다. 심지어 그는 누이 동생을 음악 학교로 보내려는 마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냉소에 벌레는 죽었다. 싸늘한 시체를 바라보며 남아있는 식구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저자의 인용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여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물론 재미는 별로 없다. ㅎㅎ

#1
잔치에 대한 나쁜 추억. 가족들이란 꼭 모이면 쥐 뜯고 싸우고 지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다. 꼭 다같이 모이는 잔칫날 싸운다. 이번 설날도 영락없다. 물론 싸운다고 나쁘지 않고 실제로는 웃음도 띤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행복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과연 무언지 혹은 지역 더 나아가서 국가, 여하튼 개인과 맞서는 집단이란 과연 무언지.

박노해가 말한 ‘나 없는 우리’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지식이 짧아 섣불리 결론은 못 내리겠지만 결국은 스피노자가 말한 개인의 코나투스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은 정리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쁨의 윤리학’ 이라고 이걸 제약하려는 제도에는 맞서 싸워야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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