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p.54 민속 연구가로 특히 도호쿠 지방의 음식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유키 도미오는 생산자 대신에 ‘대기자’라는 말을 제안한다. ‘그는 농사를 짓는다는 건 작물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변화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게 교육의 본질이 아닐런지.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최선이다.

p.55 상대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게 하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 요컨대 함께 살아가는 일에 점점 더 서툴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왜냐하면 함께 삼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리지 않고 우째하였든 억지로 만들려고 애썼던 숱하게 지난 날들. 반성할지어다. 기다릴지어다.  

p.79 소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갖고 있으니 나도 명품 가방을 사야 한다’는 심리는 혼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옷을 살 때의 기쁨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줄근해 보일지 모를 자신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소비 행위는 타자와의 경쟁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결국 나 스스로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내면에 자신이 있다면 외양은 그저 부산물일 뿐이다. 저절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흔한 말로 명품을 사지 말고 나 스스로 명품이 되도록 노력하자. 그건 더욱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다.

p.95 러미스에 따르면 지금 유행하는 세계화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식민지화나 제국주의 모두 서구 문명과 경제 제도 속에 전 세계를 편입 시키려는 것이었으므로 세계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일제 시대의 발전과 IMF 이 후 신 자본주의 시대의 발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모두다 자본을 가진 세력만 살찌운 행위가 아닌가? 하층 혹은 중산층의 삶이 개선되었는가? 시야를 돌려 다른 나라는 어떠한가?

선진국이라는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복지가 발달한 유럽은 아닌 것 같은데. 결국 나라의 방향도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는 복지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살펴보면 이명박도 우리 나라가 복지 국가라고 하고 있다. 한미 FTA의 홍보 문구에는 어김없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한다.

진실을 봐야 한다.

p.100 이반 일리히의 말에 따르면, 빈곤은 사람들이 시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 깊어진다. 즉, 산업 생산에 의한 풍요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손발이 비틀린 사람들이야말로 불만과 무력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 속에서 각자가 지녔던 살아가는 기술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우리는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또는 ‘돈이 되는’ 기능과 능력, 태도라는 가치(희소성이 높을수록 환금성이 커진다)를 획득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매우 오래 학교를 다닌다.

밥을 하자. 주말 농장을 체험하자. 귀농을 준비하자.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의식주가 아니더냐. 자연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p.111 서울 도심의 가로수를 잘라보면 그 단면에 나이테가 없다는 애기가 생각납니다. 그늘이 없는 것은 그렇다 해도 나이테가 없다니요!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이테가 없다는 것은 성장이 없다는 것이다. 나무가 이런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생명을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p.126 “전후 일본은 구미 제국을 따라잡고 추월하겠다는 목표로 정치, 경제의 중앙 집권 시스템의 경제 대국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 왔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이와 같은 전후 50년의 가치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일본을 목표없는 사회라고 조롱한다. 반면 우리 나라는 다이내믹 코리아 라고 자랑한다. 과연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747로 대표되는 성장 제일주의? 정작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여전히 구시대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모습이 아닌가?

p.143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말을 전해 왔다. 하지만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나? 이 생각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건가?

p.167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그럴 여유가 있으면 돈벌이나 다른 경제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과 자기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정치에, 어째서 우리들은 시간을 좀더 할애하지 않는 것일까.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가? 트위터 RT, 페이스 북? 아고라 서명? 너무 멀고 나약하다. 이러한 무기력을 떨쳐 낼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지방 자치,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 역할을 해 주어야 되는데 여전히 미약하다. 과연 우리에게 의무라고 하는 정치 참여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는가?  

1사 1촌 농촌 후원같은 1인 1시민 단체 가입의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도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p.175 <빠빠라기>에서 투이아비는 이렇게 말한다.
“배불리 먹고, 머리 위에 지붕을 지니고, 마을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신은 우리들에게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어째서 그 이상 더 일해야 하는 것일까?”

p.182 자동차를 부지런히 닦았으나 마음을 닦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뻔질나게 들어갔지만 제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기계가 나를 다 먹어 버리니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p.195 길에 서서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마 잡담으로, 내용 자체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다다의 말처럼, 문제는 대화의 내용이 아닌 것이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특별한 목적 없이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 여기에 바로 놀이의 원형이 담겨 있는 것이다.

p.210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이나마 줄여나가면서 자족적인 생활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는 것이다... (중략) … 그러나 일리히도 지적했듯이, 운동 차원의 언플러그에만 의미를 둘 필요는없다. 단순한 취미나 놀이, 도락이라 여겨지던 것 - 예를 들어 일요 목공이라든가 주말 정원 가꾸기 등에도 실은 중요한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분적인 플러그 뽑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들이 무엇을 배워 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과거 플러그되어 ‘편리’하고 ‘쾌적’한 현대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지금 우리들은 조금씩 생활의 기술을 회복해 가면서 생태계와 공동체에 새롭게 플러그되는 경험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p.227 새로운 제품들을 사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사회의 틀 자체가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스마트 폰이 없으면 대학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90년대는 핸드폰이 없으면 어려웠다. 여전히 대학 생활은 계속 힘들어져 간다. ‘청빈’(젊은 가난)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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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by 쓰지 신이치

Posted at 2010.12.25 14:44//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저자

p.271 슬로 카페 선언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유기적인 organic 카페입니다.
무농약, 유기농 커피의 보급을 통해 ‘남쪽’ 생산자의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 그리고 일본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페이 트레이드 가게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부와 빈곤의 격차를 확대하는 일방적인 세계화 대신,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 ‘남’과 ‘북’,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 사람과 다른 생물들 간의 공정한 관계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푸드를 만듭니다.
안전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머니를 사용합니다.
이자를 낳지 않는 통화로서 지금 전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지역, 대체 통화를 받아들여 공정하고 활기찬 지역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정보 카페입니다.
환경문제, ‘남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 교환의 장, 그리고 음악, 영화 등의 표현 활동의 장이 되기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비즈니스를 꿈꿉니다.
투자, 기업, 판매, 소비 등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 등의 가치를 사회에 되돌리기 위한 사업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느림보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다가오는 환경 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의 문화 위기이며 라이프스타일의 파탄이라고 생각하여, 자연과 인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이고 친환경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마음 넉넉한 생활 문화를 제안합니다.

슬로 카페는 ‘나도 이런 카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from http://cafeslow.com


#0
요즈음 재미있게 보고 있는 쓰지 신이치 씨의 ‘슬로 라이프’. 최근 고미숙의 ‘호모코뮤니타스’,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의 연장선에서 읽고 있다.

#1
“천천히 읽는 책” 이라는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키워드는 슬로우와 책이다.

먼저 슬로우는 철학이다.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우리네 생활 질서를 거부한다. MB 역시 우리 안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니더냐. 무엇을 위한 성장이고 발전인가? 배불리 먹고, 머리 위에 지붕을 지니고, 마을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인생의 목적 아닌가? 이것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왜 계속 소비하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 달려만 가고 있지?

책은 수단이다. 자신을 돌아다보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책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면  우리는 진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외고, 명문대, 대기업이 결코 선망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불쌍한 삶이 최고의 가치라고 강요하는 시대가 부끄러울 뿐이다.

#2
홍대 스피릿 이라는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 강남, 압구정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홍대 스피릿.
자본에 반대하며 건전한 문화를 이끌어 내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 대안적인 창의적인 그리고 반 상업적인.  

카페 간판 혹은 메뉴판에 조그맣게 ‘홍대 스피릿’ 이라는 광고 문구를 집어 넣고 가맹점을 모집하는 거다. 물론 아무나 가입은 안된다. 위의 가치를 실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강제해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수입의 몇 %를 인디밴드에 후원합니다, 주말 농장에서 직접 기른 배추입니다, 진보신당에 후원하겠습니다, 매주 월요리 쉬는 날에는 4대강 반대 1인 시위를 한다 등등. “published by 홍대 스피릿” or “connect to 홍대 스피릿”으로 광고 문구를 만들고.

p.300 어쨌거나 나무늘보는 진화의 실패작이 아니라, 오히려 열대우림이라는 환경에서 훌륭하게 적응하고 번성한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포유류들이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강하게’를 외치며 세찬 생존 경쟁과 영고 성쇠의 역사를 거듭하는 것을 곁눈으로 지켜보며, 나무늘보는 높다른 나무 위에서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저에너지, 순환형, 공생, 비폭력, 평화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무늘보의 삶의 방식이야말로 21세기 인류 생존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힌트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월한 나무늘보


#3
그렇다는 이야기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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