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참석한 저자 강연회.




강의 내용과 강사님 스타일이 나랑 코드가 잘 맞았다.

무언가 아카데믹하게 촘촘히 따지기는 싫다, 그래도 아는 척은 조금하고 싶다. 먹물근성 혹은 허영심 - 잘 충족시켜 주었다.

통상적인 유럽의 철학사와 역사를 뒤집는 해석들이 흥미로웠다. 

'개인의 발달' 이라는 관점에서 1415년 Hus 이 후 전체 유럽 사회의 철학 흐름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연계해서 쭈욱 훑어 주는데 쏘옥 빨려 들어갔다. 특히 교과서에서 찬양 일색이라고 배웠던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그냥 깔아 뭉개는데 참 속 시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19C 전체를 니체가 의미한 사생아 같은 시대(?, 적절한 표현인가)라고 걍 퉁치고. 

개인주의를 '긴장'에 주목한 게 특히 공감이 갔다. 세상과 나와의 긴장이 없다면 진실을 추구하는 진정한 개인주의는 발달할 수 없다는 니체의 해석을 명쾌히 설명해 주었다. 나 역시 내 속의 불만이 없었다면 '집단의 혐오', '자유의 옹호'는 생각하고 살지 않았으리라. 아마도 내가 지금 이민을 꿈꾸는 호주, 뉴질랜드 등에 살았다면 집단이니 개인이니 이런 어려운 개념은 생각도 안 하고 그저 편하게 살았겠지. 그런데 고맙게도 우리 사회 그것도 명바기 밑에 살아가니 이런저런 분개도 하고 그 분개를 없애려고 철학 공부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이런저런 측면에서 내 마음에 드는 강의다. 내가 나를 표현하는데 왜 '개인주의'인지 조금 설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저자분과 페이스북 친구도 맺고 앞으로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하기까지 하다. (@bangmo77)

그런데 굳이 딴지를 걸자면.... ^^ (절대 악의는 아니고)

우리 사회가 돈, 성공, 웰빙의 가짜 개인주의가 아니라 자아, 진실을 추구하는 진짜 개인주의가 탄생하기에 적합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오바'라는 생각이 든다. 군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적이 폭탄도 던져주는 마당에. 그리고 학연, 지연 말하는 건 이제 식상할 정도로 뿌리 깊은데. 

개인이란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성급한 생각이 드는데 혹시 저자님도 과거의 운동권 경력에 대한 너무 과도한 자기 비하,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라는 의심도 살짝. 이재오, 김문수에서 느낀 불쾌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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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라불리는기적집단을벗어나참된개인으로비상하라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박성현 (들녘,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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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 개인주의
문체 :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 잦은 니체 발췌
주제 : 개인주의 옹호. 단, 여기서 개인주의는 개인의 돈, 성공, 웰빙 등의 단순 쾌락 추구가 아니라 자아와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개인을 의미.
공감 : 니체가 말한 낙타, 사자, 아이의 개념에 맞게 집단의 굴레를 벗어나서 개인을 옹호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재오, 김문수처럼 자기 반성을 넘어서 자기 비하를 하는 것 같은 운동권 어투가 거슬린다. 그래서 그런가? 전반부 유럽의 철학 역사를 서술하는 부문에서 잘 읽히는 책이 갑자기 후반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논리의 비약으로 이어진다. 마치 영화 '아이들'처럼 책을 2권 읽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다.

발췌
 p.48 - 공포와 질투 : 떼가 개인을 조종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우리 사회의 만연한 공포와 계급 투쟁을 보라.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개인의 원동력은 용기다. 불안이 아닌 용기야 말로 개인이 진정한 자아로 재탄생 될 수 있는 밑거름이다.
불개와 장군, 악마와의 거래 p.101 프랑스 혁명 1789은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의 마수로 끝나다. 나폴레옹은 유럽에 국가의 힘을 보여주고 유럽은 근대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두 명의 예언자 p.120 오직 키에르케고르, 니체만이 개인을 긍정하였다. 진실, 영혼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을 긍정하였고 니체는 오직 개인만을 긍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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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권가약 2월 모임 후기

Posted at 2011. 2. 25. 18:39// Posted in 이 책 읽어 보세요
백만년에 정리한 모임 후기. 모임을 하고 정리를 해야 역사가 되는데, 그놈의 귀차니즘으로 못하고 있다. 후기만 잘 정리해도 엄청난 재산이 될 건데. 아쉽다.

그러고 보니 이미 동아리 애들과 4년 넘게 가졌던 독서 모임도 정리를 안해서 그냥 날려버렸는데.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잘 써야 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빨리빨리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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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등에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휜 각질의 칸들로 나위어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질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소설 <변신/카프카>의 충격적인 도입부입니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주인공이 갑자기 벌레가 되어 버립니다. 소설만큼이나 백권가약 2월 모임도 쎄게 시작 하였습니다.

혹시 소설과 유사하게 식구들에게 벌레 취급을 당한 경험이나 사례를 알고 계시나요?

처음부터 집에서 백수, 건강, 학업 등의 이유로 사실상 벌레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민감한 가족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백권가약이 시작한지 어느덧 1년 2개월, 지난 세월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신뢰라는 굳건한 바탕을 깔아주고 있었습니다.

당장 현재 진행형 백수인 저부터 담담히 이야기 합니다. 저의 집안일도 조금 보태어서. 이어서 30대 늙다리 학생, 거의 소녀 가장, 청년 실업 아들을 두신 어머니 등 생생한 신앙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아시디사피 글 이라는 게 말과 다른 성격의 매체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분위기는 무겁지 않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생도 아니고 어느덧 30대, 다들 개인의 아픔을 혼자만의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자연스레 풀어 놓습니다. 참가자들 모두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 내공을 갖추었습니다. 당장 옆자리에 앉아있는 분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고 또한 일부 (혹은 대부분) 문제는 MB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문제이기에 굳이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자인 제가 무거운 분위기 질색하는 애니어그램 7번 몽상가 타입이라 토론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지난 22일 화요일, 서울역 RWS 사무실에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는 30대가 대부분인 저희 모임에서 큰 아드님이 31살이신 최은희 님(자칫 편향되기 쉬운 저희 모임에 큰 선물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요즈음 미모의 조국 교수님 따라 정치에 ‘급’관심을 갖게 되신 유지연 님, 독서는 물론이고 글쓰기 공부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듬직한 안학이 님, 최근 칼퇴근 할 수 있는 멋진 직장을 가지게 된 이슬기 님, 아이처럼 아이패드를 늘 가지고 다니며 위룰 게임 삼매경인 장종성 님, 2달 연속 선물을 가지고 참가해 주신 한상봉 님, 오랫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컴백하신 허수인 님, 백권 가약이 아닌 백수 가약 모임(최근 저희 모임에서 확인된 백수가 4명,  곧 1명이 추가될지도....)에서 퇴직이 아닌 전직의 능력을 보여주신 김혜원 님 그리고 저까지 총 9분이 모였습니다.

책이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만’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저자 카프카의 가족에 대한 불편한  문제 제기를 뒤로 하고 강신주 씨의 철학 책으로 넘어 갔습니다. 철학 이라는 또 하나의 편하지 않는  영역이지만 강신주 씨 책이기에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어려운 철학을 쉽게 풀어내어 우리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그의 능력은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강신주 선생님>

필연성과 우연성을 인과 관계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현대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의 의견처럼 타자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사랑이다 등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에 관한 짧은 소감을 나누어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놀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넘어갔습니다. 일은 그저 스트레스이고 취미 활동 특히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월화수목금금금 우리네 모습이 역시 빠지지 않았습니다. 한 참가자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서 거의 10개 넘는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취미는 취미일 뿐,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취미를 일로 만들어서 한 몸에 부러움을 받았던 한상봉 님 역시 10년 가까운 직업 생활에 피로감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취미와 일이 일치하여 좋았으나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자전거 타기 라는 새로운 취미 생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취미 생활이 일이 되는 것 역시 쉬운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 직업에서 성공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호이징하씨가 말씀한  ‘호모루덴스’ 본능에 입각해서 일상을 놀이처럼 즐기면서 사는 것도 대안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관건은 자기의 리듬에 맞게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느냐겠죠.  

마지막으로 “어떤 상호 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 의식”도 없는 진정한 의미의 ‘선물’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참가자들 모두 숙연해집니다. 모두들 진정한 의미의 선물을 주거나 받은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적어도 기억을 한다는 의미에서 지금껏 선물이라고 주고 받았던 것들이 대부분 한순간에 뇌물이 되어 버리는 순간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상봉 님이 진정한 선물로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2월 달에 저와 이슬기 님이 생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작은 생일 파티를 열고 영원한 글쓰기 멘토 행복한 상상 김민영 이사님이 아이폰 동영상 촬영도 해 주셔서 더욱 빛났습니다.
(동영상 링크는 요기로, http://www.youtube.com/watch?v=t6IFfsr2T3M)

그렇게 파티와 함께 케익 만큼 달콤한 2월 모임이 끝났습니다. 어려운 철학이지만 모두들 즐거운 모임이었다는 참가자들의 다소 형식적인 소감 발표로 모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자는 형식적인 소감 발표에 필 받아서 다음 3월 모임 주제 책도 어려운 철학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출간한지 보름도 안 되는 따근따근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 입니다. 그리고 2월 달과 형식을 똑같이 하여 다른 1권의 책은 문학, 그 중에서 단편으로 정하였습니다. 세계 3대 단편 소설가로 칭송받는 <체흐프 단편선>입니다.

시간, 장소는 동일하게 3월 마지막 주 화요일(29일)이며 서울역 행복한 상상 사무실입니다.
많은 참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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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금금의 한 직장인이 어느날 벌레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집안 식구들은 그를 벌레 취급한다. 그 집안 식구들이란 그 직장인이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다. 심지어 그는 누이 동생을 음악 학교로 보내려는 마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냉소에 벌레는 죽었다. 싸늘한 시체를 바라보며 남아있는 식구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저자의 인용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여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물론 재미는 별로 없다. ㅎㅎ

#1
잔치에 대한 나쁜 추억. 가족들이란 꼭 모이면 쥐 뜯고 싸우고 지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다. 꼭 다같이 모이는 잔칫날 싸운다. 이번 설날도 영락없다. 물론 싸운다고 나쁘지 않고 실제로는 웃음도 띤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행복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과연 무언지 혹은 지역 더 나아가서 국가, 여하튼 개인과 맞서는 집단이란 과연 무언지.

박노해가 말한 ‘나 없는 우리’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지식이 짧아 섣불리 결론은 못 내리겠지만 결국은 스피노자가 말한 개인의 코나투스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은 정리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쁨의 윤리학’ 이라고 이걸 제약하려는 제도에는 맞서 싸워야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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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강신주 씨 강의는 쫓아 다니면서 계속 들어야겠다. 세상을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나에게 철학은 필수 학문이다. 그 철학을 가장 쉽게, 가장 깊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강신주 씨다. 경배해야 한다.

<등산복이 아니라서 무효>

강신주 씨를 경배하는 이유
. 뛰어난 집중력. 그 분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 사람의 집중력이 보인다. 이만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나 몰입이 필요할까? 철학자란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낯설게 보이려면 관찰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의에 충실한 사람이 강신주 아닐까?

. 무엇보다 쉽다. 언젠가 강신주 씨는 강의에서 자기는 책을 쓰고 강의를 할 때 항상 뒤에서 졸고 있는 3명의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깨어 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수학 또는 영어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반 이상 잠들어 있는 교실을 아무런 욕심 없이 바라보던 수많은 선생들의 눈빛. 닥치고 경배하여야 한다.

. 내공의 끝이 어딜까? [철학 VS 철학] 이라는 책이 있다. 동, 서양 철학자 100명 이상을 망라한 책이다. 900 Page가 넘어가는 광할한 분량에 3만 5천원이라는 압박감까지. 누가 감히 이러한 시도를 하려고 엄두조차 낼까? 한 사람이 그것도 많지 않은 나이에 이러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

책 리스트
. 강추 : <철학 삶을 만나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 그 외 : <철학 VS 철학>, <노자 대 장자>, <공자 대 맹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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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포

Posted at 2011. 2. 7. 03:53// Posted in 책을 쓰자
우리 사회의 공포감. 끊임없이 비정규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동력 아니겠는가? 사람의 능력이란 극한 상황에서 어떤 한계를 초월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상에서의 지배력이다. 항상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만이 평소에 나태함에 빠지지 않는다. 쉬운 예로 삼성의 위력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삼성은 기본적으로 창의력이 뛰어난 기업이 아니다. 단지 그들은 실수를 하지 않을 뿐이다. 아이패드 보고 갤탭으로 따라잡는 속도를 보아라. 다른 기업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 원동력은 위에서 말한 공포이다. 일상을 공포로 만들어서 근로자들이 매사에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준이 상상 이상이다. 다른 한국의 다른 LG니 현대니 하는 기업들은 따라 할 수도 없을만큼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하물며 중소 기업이며 다른 사회의 정상적인 기업들은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그 공포를 참을 수 있는 사람만이 삼성의 직원이 될 수 있다. 머 1~2년은 참는다 하지만 그걸 계속 참는 사람들이 신기할 뿐. 머 똑같이 우리 사회는 박정희 이 후 50년을 참기는 했지만.

나는 그 공포를 벗어나고 싶다. 일상은 공포인가? 사람들은 그저 세상에 소풍왔을 뿐이라고 한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그 공포의 실상이란 결국 정치 권력의 술수 아니던가? 인간의 본성은 즐기기 위해서 사는 호모루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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