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몰라요

Posted at 2011. 1. 21. 09:33// Posted in 책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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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몰라요.
- 하일성

2009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때와 똑같이 수원 삼성전자에 회의를 다녀오는 길이다. 회의가 늘 그렇듯 결론은 나지 않고 추가로 자료 조사를 해서 다시 보고하겠다는 수준으로 마무리 되었다. 시간이 점심 때라 같이 간 영업팀 김 모 차장과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만만한 순대국밥 집으로 들어갔다.

가벼운 이야기가 오고 가다 김 차장이 은퇴하신 전 사장님이 응급실에 계시는 걸 아는지 물어본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 어두운 편인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 대리 그것도 몰라? 지난 2월에 쫓겨난 사장님 지금 삼성병원에 있어. 그것도 영화에서 보던 외부인 일체 출입 금지되고 산소 커튼인가 먼가 하얀 거품 나오는 중환자실 있잖아. 벌써 2달이나 되었데.”

믿기지가 않았다. 얼마전까지 현업에서 건강하게 활동하는 분인데. 삼성 계열사 사장님 이셨던 그 분은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사장까지 오른 분이다. 삼성 그룹 임원만 15년 이상 꽤 오래 하셨다. 주변의 전무, 상무 등 높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반 말단의 직원들에게는 온화하셨다. 체육 대회 등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행사에서는 늘 트로트로 부르시며 소탈한 모습을 많이 보여 주셨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롤모델’ 정도될까? 사돈에 팔촌까지 통들어도 고위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재능도 극히 평범하여도 열심히 노력하면 사장님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게 만드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 분이 지난 정기 임원 인사 이동에서 물러나셨다. 삼성 그룹 내에서 60살 이상의 임원을 정리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얼마 지나고 나서다. 해마다 삼성은 목 두꺼우신 42년 생 회장이 젊은 조직 운운하면 자기보다 젊은 분들이 우수수 물러 난다. 그건 2008년, 2009년, 2010년 해마다 똑같다. 우리 사장님도 48년생이시니 연세가 꽤 되셔서 명퇴를 당하셨다.  그만두시고 소일하시던 사장님은 3월 어느 토요일에 사모님과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을 보셨다. 돌아오는 월요일은 두 분이 하와이로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였다. 모르긴 몰라도 30년만의 두 분 만의 오붓한 휴가이시지 않으셨을까?
 
물론 나도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는 않은데 사장님이 뮤지컬 잘 보시다가 조금 어지럼증을 느꼈다고 하였다. 요즘 나이에 62살이면 젊은 편이니 괜찮겠지 하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지셨다. 그 길로 응급실에 가신 사장님은 깨워나지 못하셨다. 평소에 늘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 직원들에게 늘 건강을 강조하는 하는 분이셨다. 전사 산행을 하면 직원들에 비하여 빠른 걸음으로 산에 오르시기도 하셨고, 늘 기운이 넘쳐 목소리에는 항상 에너지가 느껴지시는 분이었다. 아마도 8할은 퇴임 이 후의 충격이 아니었을까 쉽다.

어안이 벙벙했다. 앞에도 말했듯이 사장님 정도면 평사원들의 롤모델이다. 아마 평범한 샐러리 맨들이 한 번쯤 꿈꾸는 이상형 아닐까? 열심히 일하면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도 임원이 될 수 있다, 임원이면 인센티브가 엄청나다고 하더라, 또 전용 차, 전용 운전사, 전용 비서 등 따라오는 처우가 셀 수 없다고 한다. 소문에 사장님은 오랜 임원 생활으로 강남에서 현금 부자라는 말을 듣기도 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제 막 은퇴하시고 여행 다니시면서 자기도 돌아보면서 조금 여유있게 사시려고 하는데... 너무나도 짧다.

‘샐러리 맨은 아무리 성공한다고 해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진을 하고 좋은 부서로 이동을 하고 포상을 받고 그런 것들이 참으로 허망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 끝은 먼데? 라고 묻는다면 별다른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회사 생활은 승진만이 전부가 아니다. 승진을 조금 미루고 천천히 살아가시는 분들도 참으로 많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럼, 회사를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사장님은 현업에 계속 계셨으면 건강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회사란 놈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일까? 물론 혼자서 망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퇴직과 크게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았다. 과연 나에게 회사란 내 청춘을 바칠만한 곳인가? 퇴직이라도 당하면 어떡할 것인가?  사춘기 시절은 물론 대학교에서 한 참 놀 때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에 조금씩 발목이 잡혀갔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아마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비슷하였듯이 생각이 많아졌다. 덕수궁 추모 행렬에 선 나의 고민에 ‘죽음’까지 더해졌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죽음이란? 인생의 유한성 등등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고 난 후 월요일 출근을 하니 사장님이 5월 22일에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그렇게 5월이 깊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고민들은 나에게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 해 10월 삼성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였고 다음 해 12월에는 그 회사도 그만 두었다. 평소 관심 있었던 독서 및 글쓰기 관련 수업을 몇차례 들었고 직접 독서 토론 강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프로그램도 참가 하였고 희망제작소라는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직장인 강의도 재미있게 들었다.    

그랬다. 그 날 점심 시간의 충격, 그리고 떠올랐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교적 예측 가능했던 내 인생이 어느 야구 해설자의 말처럼 모르는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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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능과 나의 열정.

먼저 나는 나의 재능에 대하여 고려한 적이 있는가?
그걸 열정을 가지고 개발한 적이 있는가?

중 고등학교 시절 난 시험에 익숙한 놈이었다.
시험 성적은 잘 하는 과목을 더 잘하는 게 아리라
몬 하는 놈을 얼마나 잘 하는 거냐가 결과에 중요하다.

걍~~~~ 엉덩이 쳐박고 열심히 하믄 된다고 들어 왔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적은 잘 나왔다.

그건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똑같지 않은가?
걍 ~~~~~ 나는 능력 보다는 인간성으로 승부하고 성실로 평가 받으려 하지 않는가.

난 지금 야구와 축구 이 외에는 열정이라는 게 없다.
박제 혹은 무엇.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 건에 찍히지 않는다.”

- 톰 글래빈, 미국 프로야구 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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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6일. 이 날은 마흔 한 살의 미국 프로야구 투수 톰 글래빈이 MLB 사상 23번째로 300승을 달성한 날입니다. 국내 야구도 관심이 없는 제가 먼 나라 야구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이루어 낸 300승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투수로서 자질이 뛰어나지 않으면서 대기록을 달성한데 있습니다. 그의 공은 최고구속이라고 해봐야 시속 140km대에 불과합니다. 구질도 다양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공 하나하나에 열정을 담아 던집니다. 특히 바깥쪽 낮은 곳만을 찌르는 예리한 코너웍과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볼배합으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다른 투수들이 저마다 빠른 공을 던질 때, 그는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을 나누어 던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의 300승 기록 뒤에 있는 197패라는 숱한 패전 역시 예사롭지않게 느껴집니다. 즉, 197번이라는 패전을 통한 배움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300승이라는 대기록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지속적인 열정이 없으면 삶은 때 이르게 피었다가 점차 시드는 하향곡선을 그릴 것입니다. 재능도 있고, 열정도 있으면 생애 전체가 피어나기에 수평곡선을 유지할 것입니다. 만일 재능은 뛰어나지 않지만 지속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초반에는 힘들겠지만 슬로우 스타터가 되어 나이가 들수록 피어나는 상승곡선을 그릴 것입니다.

문득, 당신의 생애곡선이 궁금해집니다.

- 2007. 11. 13 週 2회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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