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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금금금의 한 직장인이 어느날 벌레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집안 식구들은 그를 벌레 취급한다. 그 집안 식구들이란 그 직장인이 그렇게 열심히 일한 이유다. 심지어 그는 누이 동생을 음악 학교로 보내려는 마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식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냉소에 벌레는 죽었다. 싸늘한 시체를 바라보며 남아있는 식구들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한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저자의 인용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여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물론 재미는 별로 없다. ㅎㅎ

#1
잔치에 대한 나쁜 추억. 가족들이란 꼭 모이면 쥐 뜯고 싸우고 지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다. 꼭 다같이 모이는 잔칫날 싸운다. 이번 설날도 영락없다. 물론 싸운다고 나쁘지 않고 실제로는 웃음도 띤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행복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과연 무언지 혹은 지역 더 나아가서 국가, 여하튼 개인과 맞서는 집단이란 과연 무언지.

박노해가 말한 ‘나 없는 우리’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지식이 짧아 섣불리 결론은 못 내리겠지만 결국은 스피노자가 말한 개인의 코나투스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은 정리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쁨의 윤리학’ 이라고 이걸 제약하려는 제도에는 맞서 싸워야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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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

Posted at 2010. 8. 2. 07:17// Posted in 이정훈 소개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 제목을 받아드니 참 난감합니다.
다시 한 번 가족 이야기를 써야 되는데 그러면 또 중복이 될 것 같구요.

하지만 ‘내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는 제목에 충실하다면
전 엄마 뿐이 없네요. 선생님, 교수님 직장 선배 등 제 인생에 멘토가
있으면 그 분을 쓰면 좋겠는데 아직 없습니다.
(아, 최근에 RWS 김민영 이사님이 있네요. 
김민영 이사님이 진정으로 제 멘토가 될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겠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점을 보았는데(아마 인터넷으로 추정됨)
부모와의 관계 풀이에서 제가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주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피곤한 효자로 태어날 운명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죠.

돌이켜보니 많은 부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입니다. 그 때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었는데
처음으로 빈, 부의 격차를 심하게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용돈을 준다고 해결되지
못하는 벽이 보였죠. 당시 압구정동에서 보았던 외제차들, 과 동기들이 입었던
많은 좋은 옷들, 그리고 선배들이 여자에게 껄떡거리기 위해 뿌리던 돈들.

학생 식당의 1,000원 짜리 밥이 항상 궁하였고 친구 넘이랑 소주 한 잔 하기가
궁했던 나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벽으로 다가왔죠. 당시 현금카드에 9700원(수수료 300원)이
남아서 돈을 못 뽑으면 은행까지 달려가서 비굴하게 9000원 인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기억으로 전 은행 수수료를 무쟈게 싫어해요. 내 돈 내가 뽑는데 돈 내라는 나쁜 놈덜)

엄마를 원망했었죠. 그리고 가족을.
무슨 새끼들을 4명이나 나아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책임지지도 못할거면서 능력도 안 되면서.
그리고 큰누나는 지가 맏이면 막내가 서울 왔으면 용돈도 주고 책임을 져야 될 거 아냐 등등

(아, 물론 일상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대개의 아이들이 그렇듯 객관적인 상황이
안 좋아도 그 속에서 나름 아이들은 재미있게 즐깁니다.)

그런 원망 속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독서 토론’이라는 ‘운동권’ 동아리를 했었는데
거기서 ‘사회 구조’의 문제를 깨우치게 된거죠.

이건 정말 죽도록 일하시는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엄마 정도의 성실함이면 적어도 그 사회가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자식 새끼 공부 시키는 건 문제가 없고 집도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원망은 자랑으로 바뀌고 어머니에게 배운 성실함과 긍정적 마인드는
저의 최고의 자산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몸에 각인된 기억이기에 나는
성공할 수 밖에 없다 라고 여기게 되었죠.

회사에 들어오고 인정을 받고 돈도 벌게 되었습니다. 또래 애들 보다 제 인생은
나아졌습니다. 어느 정도 인생의 길이 보입니다. 적어도 어머니처럼
남에게 비굴하게 굽신거리면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알량한 자존심, 자존감은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위치까지는 올라 왔습니다.

(아, 이게 제가 집을 샀다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그렇게 말랑말랑 하지 않다는 건 잘 압니다.
이걸 비유를 하자면 제가 아파트를 샀다는 게 아니라 음료수 정도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는다 정도입니다. ㅎㅎ)

하지만 전 이게 끝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불쌍하신 우리 어머니의 꿈을 이루는 것은 제가 보란듯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 고개 안 숙여도 되도록 만드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대학교 때 였습니다.
역시 동아리 였는데, 제 공부 정확히 장학금을 위해서 도서관을 갈 것이냐
동아리 후배 애들을 챙길 것이냐 대한 고민을 계속했었죠.
그러다 엄마도 원하는 게 내가 인생에서 성공하는게 아니라 인생에서 행복한 놈이
되는 걸 바라실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놓고 술 퍼먹고 놀았습니다. ^^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제가 지금 하는 일이 돈은 많이 받지만
이 일이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든 빽도를 외치고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아, 요즈음은 여자 친구라는 변수가 생겨 무쟈게 힘듭니다.)

‘가난해도 괜찮아’ 저의 새로 생긴 다짐입니다.

엄마가 가진 가난해서 작아야만 했던 집을 허물고
아파트를 사 주는 게 엄마의 꿈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 작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엄마의 꿈을 들어주는 거라 생각됩니다.

가난하기에 못 배우신 어머니라 비록 말로 표현을 못 하시겠지만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엄마의 꿈이 그것이라고 믿기에
조금 용기를 내어 보겠습니다.

p.s
이런 글도 올리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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