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서' 침이 고인다

Posted at 2009. 5. 31. 23:21// Posted in 책을 쓰자
김애란, 문학과 지성사

김애란 소설은 참으로 공감되는 부문이 많다. 그건 그 소설의 주인공들이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고시를 치고 있거나 알바로 논술 첨삭을 하고 있다. 설사 취직을 하더라도 '피아노'를 가지는 '도도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참' 공감이 간다. 나 역시 나 주위 역시 '참' 구질구질하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집'이란 개념은 없다. 마당이 있고 거실이 있고 식탁이 있는 그런 '집' 이라는 공간은 없다. 단지 대문이 아닌 문을 열면 곧 TV가 있고 않은뱅이 밥상이 있는 그런 '방'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불이 깔려져 있다. '집'이 아닌 '방'이다. 그건 대학교 때는 반지하 '방' 이었고 직장을 잡고 난 후도 '원룸'이다.

이런 구질구질함이 소설에는 참으로 경쾌하게 잘 녹아있다. 그게 참 마음에 든다. 
이를 테면
"언니의 컴퓨터는 디귿 키가 잘 먹지 않아 작업 속도를 떨어뜨리곤 했다. 나는 신나게 손가락을 놀리다 번번이 디귿 키 앞에서 멈춰 섰다." p.30

이런 묘사가 참 좋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참으로 웃긴다. 디귿 키가 잘 먹지 않아 꾸욱 누지르는. 완전히 고장난 거라면 좋을 텐데 완전히 고장은 안 나서 디귿이 나올 때 마다 디귿을 꾸욱 누지르고 있는. 

어릴 때 우리 집의 오래된 TV가 그랬다. 내가 '투욱'치면 절대 잘 나오지 않는다. 형이 '따악'하고 치면 거짓말처럼 잘 나온다. 난 그런 형님이 좋았다. TV가 잘 안 나와도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형이 고쳐주는 TV가 훨씬 재미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어리고 젊은 청춘들은 훨씬 더 경쾌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걸 김애란 소설은 잘 보여준다. 구질구질한 우리 친구들을 잘 묘사해서 우리를 웃음짓게 한다.

김애란 혹은 작가들에게 부러운 게 이런 것이다. 자신의 기억을 이렇게 아름답게 재 창조 하다니. 나에겐 단지 나 혼자만의 기억 속의 무엇인데, 작가는 그걸 끄집어 내어 책과 글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과 공명하고 있다.

그것도 내면의 독백이 아닌 다른 객관적인 물체로 잘 묘사한다. 아주 아름답게. 
이게 바로 '이야기'의 힘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