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구본형 - 김용규 연구원

Posted at 2009. 2. 19. 14:38// Posted in 이런저런 이야기

 

참으로 멋진 글이다.
공생, 더불어 사는 삶, Echo Life 이런 말들은 거창한게 아니라
아래처럼 까마귀를 위하여 감을 남겨놓는 그런 말이리라.

 



마을에서 산방으로 오는 길 가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를 기억하시는지요? 늦가을, 감을 단 풍경이 참 예쁜 나무지요. 그 풍경이 좋아서 이곳을 찾아오던 그대 발 길도 잠시 멈추게 했다던 그 나무입니다. 겨울 초입 어느 날 나는 그 감나무 아래에 갔습니다. 주인이 그 감나무의 꼭대기 줄기와 가지들을 벤 뒤, 바닥에 버려 놓은 것을 주어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열심히 감나무 땔감을 주어 트럭에 싣고 있는데 갑자기 까마귀 한 쌍이 근처 전봇대에 앉아 섧게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즉시 일을 멈추었습니다. 그들도 소리를 늦추었습니다. 그들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나는 아직 생명 공동체와 불통하는 인간입니다. 다시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트럭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까마귀들도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맹렬하게, 심지어 이 전봇대에서 저 전봇대로 옮겨 다니면서 ‘짖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잘려진 가지 끝에 달린, 이미 홍시의 수준보다 더 물러있는 감들을 가져가지 말라는 항의였던 것입니다. 감이 달린 잔 가지들은 두고 큰 줄기들만을 챙겨 얼른 차에 싣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가을, 나는 그 감나무의 윗부분을 베어낸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랫마을 어느 어르신의 아들입니다. 도시에 나가서 살고 있는 그가 연로한 모친을 대신해 감을 따고 있었습니다. 낮은 곳의 감은 다 땄는데 높은 곳의 감을 딸 방법이 없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몇 주 뒤 다시 찾아온 그가 나무에 올라 높은 부분을 모조리 베어낸 것입니다. 이미 터져버린 감은 쓸모가 없었는지 잘려진 가지 끝에 그대로 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내년에는 낮은 가지에서 더 많은 감을 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나무를 잘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옛 어른들은 감을 따더라도 꼭 이삭을 남겨 두었습니다. 까치와 까마귀 같은 새들의 겨울 양식을 생각해서였습니다. 그것으로 새들은 겨울의 별미를 맛볼 수 있었고, 감나무 또한 다시 고욤나무로 싹 틔울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감나무 이삭을 두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살아가던 방식입니다. 추수하며 흘린 벼 이삭, 탈곡할 때 다 떨어지지 않고 남는 곡식 몇 톨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자연의 생명들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모습. 이 모습이 바로 예전의 삶을 관통했던 삶의 얼개입니다. 이것이 확장된 얼개가 우리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의 공동체에 담겨 있던 삶의 얼개는 타자를 배려하고 품는 것으로 더불어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얼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위기와 절망의 원인이 개인들의 무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얼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얼개는 지나치게 무자비합니다. 손이 닿지 않는 감나무의 꼭대기마저 무참히 엔진 톱으로 잘라내는 방식의 얼개입니다. 누군가의 몫을 더 많이, 심지어 깡그리 거두어 부자가 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방식, 지방을 희생하여 도시가 번영하는 방식, 다른 나라 노동자의 낮은 임금을 토대로 생필품의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방식, 원주민의 삶을 내몰아 더 크고 높은 집을 지어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 이 모든 것에 무감각한 방식……


지금의 위기가 그 좋은 돈을 풀어 극복되더라도 지금의 얼개로는 훌륭한 대안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위기가 반복될 때 마다 희망은 점점 쇠할 것입니다. 더 많은 희망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얼개가 논의되고 연구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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